< 설명 : 미국의 프리스 박사(Dr. Fred Frese)는 25살에 정신분열증에 걸려서 병원을 수도 없이 드나들다가, 한때 수녀였었던 한 여인을 만나서 그녀와 결혼을 하고 그 여인의 도움으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상담을 하는 심리학자로 일하면서 세미나를 통해서 자신의 경험을 수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지금도 수많은 강연을 하면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철폐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올해 64세인 그는 지금도 약을 복용하며 생활하고 있으며, 오하이오에서 네 명의 자녀와 아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래 글은 www.schizophrenia.com 에서 발췌한 프리스 박사의 짧은 전기입니다. >
지금부터 30년 전에, 프리스 박사는 오하이오주의 한 정신병원에 정신이 멍하고 망상에 빠진 상태로, 정신분열증으로 감금되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2년 뒤에 그는 자신이 정신분열증으로 감금되어 있었던 바로 그 정신병원의 수석 심리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그는 열번을 더 입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했고, 네 명의 자녀를 가졌으며 그리고 석사학위와 박사학위까지 받았습니다.
그는 두뇌가 명석하며 열정적이고 매우 헌신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제, 지난 수년간 300번 이상 공적인 연설을 행하고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차별철폐를 위한 국가적인 캠페인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온 프리스 박사는, 정신분열증을 가지고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고 또 그와 그의 가족들이 병으로부터 배운 귀중한 교훈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는 인물로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프리스 박사의 성취는 250만명의 미국인들이 겪고있는, 정신분열증의 인간을 황폐화 시키는 성격을 생각할 때, 누가 보더라도 놀라운 것입니다. 미국정신건강기구(NIMH)는 소책자에서 정신분열증이 주요 정신질환 가운데 가장 만성적이고 인간을 무능하게 만드는 질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면의 망상과 환청으로 위축되고 고통 받는 정신분열증 환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약 먹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자살을 하거나 사회로부터 멀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때는 프리스 박사처럼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던 사람들이 ,전체 노숙자 수의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게 되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감옥에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하이오주 허드슨에 살고 있는 55세의 프리스 박사는 자신만이 그렇게 특별한 경우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 그는 다른 많은 다른 정신분열증 환자들도 자신처럼 충만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은 듣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줍니다. 지난 5월에 그는 정신과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카디마(Kadima)라는 단체에서 행한 연설에서 프리스 박사는 600명의 디트로이트 시민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웨인 주립 의과대학과 디트로이트 병원의 정신분열증과 정동장애 책임자로 있는 후세인 박사는 “프리스 박사는 정신분열증이 인생의 끝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디트로이트 이벤트에서 프리스 박사와 만났습니다.
워싱턴 지역의 지원단체인 정신장애 가족협회의 총책임자인 로리 플린씨는 “프리스 박사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우리 가족의 회복이라는 희망의 살아있는 증인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프리스 박사는 이 단체의 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플린씨는 “프리스 박사의 재능과 지성 그리고 완전히 열린 마음과 유머가 많은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르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게끔 만듭니다.” 라고 말합니다.
프리스 박사가 처음으로 발병했을 때, 그는 25살의 대학을 갓 졸업한, 플로리다 주의 잭슨빌에서 핵무기를 보호하고 있는 해병대 대령이었습니다.
그는 적국들이 미국의 핵무기 공급원을 탈취하기 위한 계획으로 모든 미국 지도자들을 최면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믿는 피해망상에 빠졌습니다.
그 군기지의 정신과의사는 프리스 박사를 메릴랜드 주 베데스다의 해군병원으로 보냈습니다. 5개월 후에 그는 자신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니면 그가 정신과 약을 계속 먹어야만 하는지도 잘 모르는 체 제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프리스 박사에게는 현실과 망상을 분간하지 못하거나 환청을 듣는 것과 같은 몇가지 전형적인 정신분열증의 증상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인식과는 대조적으로, 정신분열증은 인격이 분열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환자들은 무감동하고 위축되어 있으며 망상적어서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가족 중에 환자가 있다면 분열증에 걸릴 확률이 더 높지만, 약물 남용이나 스트레스와 그 외 다른 요인들도 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분열증은 주로 17세에서 25세 사이에 발병합니다.
새로운 연구들은 비록 수년간 잠복된 상태로 발병은 하지 않더라도, 임신 2기의 바이러스 감염이 분열증을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리스 박사의 정신분열증은 일년쯤 뒤에 밀워키의 한 교회에서 재발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인간에서 원숭이로, 그리고는 개로, 뱀으로, 물고기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자(atom)로 변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핵폭탄 내부에서 사용되기 위해 장전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구의 종말을 맞아들일 도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몇 주 동안 병원에 입원한 뒤 퇴원했습니다. 그는 그 다음해 도시의 길거리를 배회하고 돌아 다녔습니다.
1968년 여름, 그가 27살이었을 때, 프리스 박사는 끌려가서 감옥에 들어 갔고 오하이오 주 법정에서 정신이상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는 가장 경비가 삼엄한 정신병동에서 3년을 보내어야 했습니다.
그가 그 기간의 생활을 얘기해주는 상황은, 환자가 변기도 없는 방에 갇혀서 화장실을 가도록 내보내주지도 않는 경비원의 감시를 받으며, 물을 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인간으로서 최악의 상황에 처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난 이후 한 군인병원으로 옮겨지고 나서부터 드디어 프리스 박사는 그의 정신분열병적 증세를 통제하기 시작한 약을 복용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록 그 뒤로 10번을 더 병원을 드나들기는 했지만, 그는 한 대기업의 관리직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프리스 박사는 아리조나 주 피닉스의 아메리칸 국제경영대학원으로부터 국제경영학 학위를 받았고, 오하이오 대학에서 심리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한때 자기자신이 정신분열증 환자로 있었던, 오하이오 주 세거모어힐에 있는 웨스턴 정신병원의 심리학 담당자로 15년간을 일했습니다.
프리스 박사는 행운과 끈기, 그의 대학졸업장과 그가 발병했을 당시에 가졌던 의료보험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일단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 보통의 경우보다 더 빨리 회복한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는 한 대기업의 관리직에 그의 건강기록에 관해서는 질문을 받지도 않은 체 채용이 된 적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때는 병원의 한 경영진이 그를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정신과 계통에서 일해도 되느냐는 다른 사람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그를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회적 차별은 오늘날에도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심각한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그 결과로 많은 분열증 환자들이 단순한 일들만을 하고 있습니다.
프리스 박사는 오하이오 대학에서 아직 그들이 대학원에서 공부중일 때, 한때는 수녀였던 지금의 부인 페니 양을 만났습니다.
그녀가 남편과 함께 제작한 2부작 비디오의 후반부 절반을 차지하는 “정신분열증 환자와의 삶” 이라는 러브 스토리에서, 페니는 그녀의 남편이 어떻게 서로 친구가 된지 잠시 만에 그의 정신질환의 비밀을 털어놓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 병에 대해 궁금해진 페니 양은 병에 관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프리스 박사와 그의 병에 관해 많은 시간을 얘기하면서 보냅니다.
프리스 박사는 그 자신의 숨겨진 인생을 그녀에게 열어 보였습니다.
그녀는 매력적이고 재미있고 지적인, 한 멋진 남성을 만난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가까워 졌지만, 그녀의 커가기만 하는 그에 대한 애정때문에 페니 양은 겁이 났습니다. 그녀는 콜로라도로 떠났지만, 곧 그가 없는 인생은 그녀에게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비디오에서 “그가 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겁이 났다.” 라고 설명합니다.
그들은 결혼을 했고 세 명의 아이들을 가졌습니다. 프리스 박사는 이전의 짧았던 결혼생활에서 전부인에게서 얻은 네 번째의 아이가 있습니다.
이제 15살에서 24살이 된 프리스 박사의 네 아이들은 모두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그래서 우울증을 치료하는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리스 박사에게는 유전적인 관련을 추측케 하는 정신분열증이 있는 한명의 사촌이 있습니다.
페니 씨는 그녀의 네 아이들에 관해 “아이들은 모두 아주 잘 자라고 있어요” 라고 말합니다. 너무 부끄럼이 많아서, 중학교 때 체육시간을 피하려고 교장실에 앉아 있었던 한 아들은 이제 막 400명의 학생들 중에서 7등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그 아이는 학급 반장이었고 연극팀 단원이었습니다. 그녀는 대학을 가는 아들에 관해서 “그 아이는 인기가 무지하게 좋아요”라고 말합니다.
16살인 딸 클레어는 자신의 지난 5년간의 우울증과의 싸움을 담은
“나의 이야기” 라는 비디오를 제작했었습니다.
우울증을 겪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약으로 성공적으로 치료될 수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건, 우리 아이들과 같은 많은 아이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거에요” 라고 페니는 얘기합니다.
프리스 박사의 부인 페니 씨는 비교예술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고 켄트 주립대학에서 연극을 가르치고 있으며, 또한 그녀는 위축되고, 부끄럼이 많고, 예민하며 수면장애나 식이장애가 있는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의사의 도움을 받을 것을 호소합니다.
가족들이 남들에게 털어놓은 관계로 딸의 우울증 문제를 알고 있는 딸 클레어의 친구들과 학교 선생님들은 딸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남을 돕는 걸 기뻐해요”라고 페니는 말합니다. 최근의 학급여행에서, 한 친구가 딸 클레어가 스트레스를 받고있는 걸 보고선 그녀에게 다가와서 잠시 함께 산책을 하자고 얘기했습니다.
그 친구는 클레어에게 “이 친구야 , 내가 좀 안아줄까?” 라며 딸을 위로했다고 페니 씨는 얘기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마음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라고 페니 씨는 말합니다.
30년간에 걸친 정신분열증과의 투병생활이 프리스 박사와 가족들에게 이 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당신은 더 증상들을 잘 파악하고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라고 프리스 박사는 말합니다. 그는 1974년에 입원했었고, 1년 반 전에도 심한 재발로 거의 입원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첫번째로, “심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질병을 인정해야 하고 약을 복용해야 합니다.” 라고 프리스 박사는 말합니다.
그는 환자가 자신의 병을 부인하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며, 특히 첫 발병인 경우 더욱 그러하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냉정하게 생각을 하려고 하지않고 그냥 병이 저절로 사라져 주길 희망한다고 프리스 박사는 말합니다.
프리스 박사는 고용주와 친구들, 이웃들 역시 정신질환에 대해 강한 편견을 가지고 있으므로, 많은 환자들이 만약 남들에게 말한다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말합니다.
프리스 박사는 정신분열증을 스트레스, 갈등, 약물남용, 죽음과 다른 상처들에 의해 악화되는, 이 병에 대한 타고난 취약성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자신의 증상이 악화되는 걸 느끼면, 그가 복용하고 있는 정신분열증 약인 ‘리스페달’의 용량을 높입니다.
그는 또한 필요할 때는 직장을 잠시 쉬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피하기도 합니다.
그가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는 애매한 상황인 경우를 대비해서, 프리스 박사는 필요한 경우에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지갑 크기의 카드를 지니고 다닙니다. 이 카드에는 그에게는 정신질환이 있어서 갈등을 잘 처리하지 못하므로, 그들의 비판을 좀 덜 위협적인 태도로 말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비난은 암시적인 비난이라도 환자에게 아주 위험할 수 있다고 프리스 박사는 설명합니다.
프리스 박사는 연구에 의하면 정신분열증 환자는 병원에서 퇴원한 뒤에 그를 비난하는 가족들에게 돌아갈 경우 재발할 확률이 더 높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과도한 통제와 규제로 운영되는 정신과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사람들도 재발 확률이 더 높다고 합니다.
그는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들, 장소 그리고 적대적인 환경을 피할 것을 추천합니다. 그는 환자의 가족들에게 환자가 이상하게 들리는 주제나 망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환자를 흥분시키지 말고, 그대신 “그거 아주 흥미로운데… 나한테 더 얘기해봐” 하는 식으로 부드럽게 얘기하라고 말합니다.
프리스 박사의 부인 페니 씨도 그녀가 남편과 어떻게 대화해야 할 지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더 이상 그녀의 남편이 자기와 눈을 마주치기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녀는 분열증 환자들이 대인관계의 신호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대화를 적절하게 끝내거나 심지어 대화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 하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녀는 또한 비난으로 들릴 수도 있는 표현들을 피합니다. 그녀는 “방바닥에 있는 양말, 그거 당신 꺼지?” 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 “당신 또 양말 방바닥에 흩어 놨어요.”라고 부드러운 표현으로 얘기하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요즘 프레드 프리스 박사는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직장을 구하고 사회적 차별과 싸울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인, 오하이오 회복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미국 정신장애 가족협회(NAMI)에서 5년간 시행하는 새로운 ‘차별 철폐 캠페인’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월에 시작한 이 캠페인은 주거과 고용 그리고 언론에 있어서의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의 주된 목표 중의 하나는, 국회에서 정신질환에 대해서도 다른 질병들처럼 완전 의료보험 적용이 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입니다.
비록 아직 상원과 하원에서의 차이점들을 해결해야 하지만, 이 법안은 최근에 국회에서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본인 가족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감동적인 증언을 했던 세 명의 상원의원들로부터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있어서 변혁의 시대입니다. 제가 자주 말하듯이, 30년간의 저의 정신분열증과 투병한 삶에서 심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시절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지금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희망이 있습니다.” 라고 디트로이트에서 행한 연설에서 프리스 박사는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