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교사의 삶 ☆
*선교사의 삶 1* (2013.12.17)
세계화의 기수 - ‘김정은과 넬슨 만델라를 생각하며’
지난 주간 세상에서 화제의 중심이었던 두 인물이다. 극과 극의 대조로 모든 언론과 뉴스를 두 사람이 장식했다. 한국에서는 “안녕들 하십니까?”란 인사가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을 살해한 잔인한 숙청 기사와 함께 새로운 의미로 등장했다. 한국사회 내부의 불만이 순간 터쳐 나온 장면이다. 만델라의 죽음과 삶의 교훈은 울림이 거의 없는 듯 하다. 그러나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인 이곳 카프카즈에서는 연일 국제 채널의 화면을 장식했다.
한국은 단일민족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현재도 민족분단국가로 세계에서 유일한 예다. 한국인의 유전인자에는 민족의 한반도 정착 이후 수천년을 이어 온 고립과 분열의 역사가 새겨진 듯 하다. 우리의 주 관심은 내부로 향해 있고, 아니면 갈라져 대립하는 한 뿌리인 상대에게 있다. 세계화가 현실이고 화두인 오늘도 내부로의 관심에 몰입한다. 과도한 경쟁과 갈등이 피로증후군으로 나타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민족의 뿌리에 대한 기사를 다시 한번 접한다. “2500년 전 몽골고원에서 흉노-몽고-무굴-여진-거란 민족은 우리와 함께 살았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한민족 DNA의 원형이다. 만주~몽골~남시베리아~중앙아시아~우크라이나~헝가리 등지까지 이어지는 광활한 유라시아대륙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대평원에서 유목민인 피를 나눈 형제민족들과 함께 세상을 누빈 것이다. 장장 8,000km의 대평원을 발판으로 혈족인 북방민족들과 더불어 동서양 모든 민족들과 함께 하는 삶이었다.
이 기상이 고구려에 의해 한반도와 중원까지 다다랐다. 그러나 한반도의 끄트머리에 이르러 더 갈데가 없어진 후에는 본류에서 벗어져 나와 고립되고, 내부로 움츠러들었다. 오늘에 이르러는 반목과 분열, 심지어 우물 안 개구리에 냄비근성까지 고착되었다. 북한 김정은의 패륜에 이르는 친척 간의 권력의 추구는 한국 역사드라마의 익숙한 재판이다. 꽤나 고상하게 치장되는 “안녕들 하십니까?”의 현상도 한반도 남쪽에서 들끓는 냄비물이다.
선교의 시인 시편 67편에서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의 구절을 대한다. 주기도의 ‘아버지 뜻이 땅에’는 모든 나라와 민족들로 이어진다. 성경의 약속들은 ‘모든 족속’을 목표와 대상으로 한다. 교회는 결코 내부에서 들끓는 것을 본업으로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아버지가 온 땅, 모든 나라와 민족들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아들된 우리가 자기 나라와 민족의 내부에 몰입하는 것은 불효, 불충이요 직무유기가 된다.
넬슨 만델라의 삶과 죽음은 주의 도가 땅 위에, 모든 나라에, 모든 민족들에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만델라는 화해와 평화의 구원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나라에 심었다. 오랜 감옥생활도, 백인들의 핍박도, 흑인동료들의 선동도 그의 정신과 걸음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 그의 나라에 구원이 임했다. 흑백의 분열과 분쟁, 예상되는 내전의 위기에서 아프리카의 유일한 세계적인 지도국으로 BRICs 국가의 일원이 되었다.
이제 세계의 나라들과 지도자들이 그와 그의 나라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가 죽고나니 한결 그의 삶의 교훈은 생생하게 살아 역사를 움직인다. 바로 민족들을 향한 전진이다. 살아 생전에 나라의 흑백민족갈등을 치유하고 봉합한 구원의 역사가 죽음의 순간에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민족을 향한 차별과 핍박에의 국제사회의 반대와 제재로 이어진다는 소식이다. ‘모든 민족이 주를 찬송케’의 진행을 보게 된다.
세상에 보내진 선교사로 교회와 신자들은 내부자의 관심을 벗어나 외부자의 시각을 가져야 한다. 구약 이스라엘의 패망의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 예루살렘교회도 그랬다. 심지어 선교시대의 서구 기독교회들도 해외 식민지를 통한 자국의 이익추구의 열망에 부응하는 모순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오늘 한국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교회와 선교의 관심사는 자기영역 확장에 다름 아니다. 갈등과 분열, 반목의 뿌리가 교회다.
우리 딴엔 북한과 남한의 현실이 꽤나 차원이 다른 듯한 착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엊그제 이곳 흑해 해변에서 마주친 현지인들과의 대화에서 김정은이 화제가 되었다. 나는 남쪽에서 왔다는 얘기를 하니 ‘그게 그거다’라는 응답이 돌아 왔다. 결국은 한 민족이요, 외부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한 통속이라는 말이다. 따져 보면 맞는 말이다. 실제로 남북한은 세상의 외딴 섬으로 살아간다. 한 혈통인 북방 형제민족들에게 이방인이 된지 오래요, 세계인으로의 시각과 기상은 잊혀졌다.
이제는 세상을 향하여 눈을 들어야 할 때이다. 내부의 폭발력에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사정이다. 죽지 못해 사는게, 불행의 대명사가 한국, 한국인이다. 그래도 우리는 내부 블랙홀로 향하는 발걸음을 계속 한다. 이제는 눈을 뜨고 돌이킬 때가 되지 않았는가! 바로 앞이 개인의 죽음이요, 사회의 갈등과 교회의 쇠퇴요, 민족의 패망이다. 이미 이 틀 안에 갖힌 것이 우리 모습니다. 이젠 떨치고 일어나야 하지 않는가!
다행히 우리의 혈관에는 광활한 유라시아대륙을 함께 살며, 누비던 북방 유목민족의 피가 흐른다. 온 땅과,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을 향한 원형 DNA가 우리 속에 깊숙이 심겨 있다. ‘할 수 있다’는 구호가 한 세대 전 나라를 새롭게 했다. 이제 다시 한번 ‘세계화’를 위해 이 구호를 외치기를 원한다. 먼 이방 땅에서 땅끝을 향하는 선교사의 삶이 던져주는 교훈이다.
선교사로 타향에서 살아온 시간들이 늘어 간다. 조상들의 걸음을 따라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해 선교지를 옮겨가며 삶과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이제 함께 선교사의 삶을 나누기 원한다.
*선교사의 삶 2* - ‘뻐꾸기 부모의 애환’ (2013.12.19)
‘뻐꾸기 부모’라고 들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짐작들을 하실겁니다. 요즘 한국의 교육사정과 연관해 유행하는 말들은 ‘기러기 아빠’, 펭귄 아빠’입니다. 여기 더해 캥거루족이 세계적인 세태가 되니 ‘캥거루 부모’란 말도 보태져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선교사의 실제 삶에 있어서 장기적인 향방을 결정하는 것은 가정 특히 자녀문제입니다. 외국 타향 그것도 주로 오지인 곳이 선교지라 이는 피치 못할 사정입니다. 거기에 자녀교육이라면 만사를 제쳐 놓는 한국인의 기질도 선교사에게 예외는 아닌듯 싶습니다.
선교사로 살다가 유턴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자녀들의 고등교육 시점과 거의 일치합니다. 여러 이유들을 대지만 실상이 그러합니다. 물론 한국선교의 인프라가 열악해 자녀문제에 있어서는 그저 여름에 애들을 모아 수련회나 하고, 가물에 콩나듯 한국에서 공부할 때 장학금을 주는 일이 있을 뿐입니다.
선교사들은 이런 형편에 한국의 기러기나 펭귄 아빠들처럼 돈을 벌어 유학시킬 형편이 되지 못하니 몸으로 때우는 것이지요. 선교사 자녀에 대한 구호는 넘쳐나지만 다섯자녀를 통해 겪은 바로는 모두가 허당입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실제적인 도움은 없습니다. 누구 하나 어디서도 개인적인 특히 담임목회자와의 직접적인 친분이 없으면 상관 없는 일입니다.
저희 가정의 2남 3녀 다섯자녀는 다섯 나라에 흩어져 있습니다. 모두 선교하며 유학하는 모습입니다. 속사정을 얘기하지 않으면 모두들 무슨 큰 후원을 받거나 거금을 비자금으로 모아둔 줄로 생각을 하나 봅니다.
아이들은 최대한 선교지에서 현지학교를 다녔습니다. 물론 오지라 선택할 수 있는 외국인학교
자체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주로 아이들의 성장기에 머물렀던 러시아는 교육수준도 괜찮고, 학비
도 거의 들지 않았습니다. 위로 두 아이는 시베리아에서 대학까지 마쳤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셋째부터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비올라 전공으로 현지 음악대학에 장학생 수준으로 입학이 결정되었는데 영주권을 가졌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1년에 만불 가까운 학비를 요구했습니다. 우리 가정의 선교비 전액으로도 감당이 안되니 1년을 묵어가며 결정한 것이 학비가 거의 없는 독일로의 유학이었습니다.
발레학교를 다녔던 넷째는 조건이나 적성은 있는데도 사춘기에 외국인으로 겪는 관계가 쉽지 않았던가 봅니다. 그래서 학교를 뛰쳐나오니 러시아에서는 더 갈데가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마침 안식년을 북미 쪽으로 가게 되니 그곳에서 무용 전공의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 전공으로 대학을 현지에서 마친 둘째도 졸업을 하고 나니 현지인과 같은 수준으로는 외국인이라는 딱지가 붙어 아무데도 갈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둘째도 같이 안식년에 캐나다로 건너 갔습니다. 영어도 하고, 전공도 더 해야 길이 열릴 상황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9개월이 지나 선교지로 돌아와야 할 상황에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할 지가 막막했습니다. 먼저 독일로 간 셋째는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전혀 없으니 현지 러시아교회에서 봉사하며 한 교인 가정에 얹혀 살았습니다.
우리 가정이 미국으로 잠시 건나가 있을 때 국경에서 쫓겨난 둘째는 캐나다 동기목사님의 배려로 머물 거처를 찾아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넷째는 정해진 거처도 없이 믿음으로 겨우 편도비행기표만 지참해 미국으로 들어갔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후 2년 동안 주로 러시아 목사님들과 교인들의 배려로 5군데의 가정을 전전하며
온갖 일을 겪고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습니다. 막 새로운 선교개척지로 들어온 우리 형편에 한 번도 가 볼 수 없었습니다. 이제 4년째인데 아직입니다.
아이들을 이래저래 떠나보내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머물 거처를 위해 지원할 수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뻐꾸기처럼 자식들을 남의 둥지에 맡기는 신세입니다. 이제 하나 남은 막내도 내년에는 어디로든 보내야 할 형편입니다. 지금 머무는 압하지야는 더 오지이고 교육환경이 열악해 중학교를 마치고는 더 머물 수가 없습니다.
본인의 희망은 발명과 비즈니스이고, 수학과 과학에 재능이 있습니다. 캐나다, 미국에서의 9개월이 막내가 러시아어권을 벗어나 공부한 유일한 경우입니다. 그래서 누나도 있는 미국 쪽이 본인의 희망입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 아무 대책도 없습니다.
아무 가진 것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을 여기까지 걸어 왔습니다. 자녀들도 그렇게 뻐꾸기처럼 남의 둥지에 떨쳐 놓았습니다. 때로는 아프고, 마음이 미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이 길을 가듯이 자녀들도 믿음의 걸음을 걷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아프지만 뻐꾸기의 울음이 아름다운 것처럼 우리의 울음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하기를 바랍니다.
*선교사의 삶 3* - ‘향수병과 현지화를 넘어’ (2013.12.21)
소련으로의 소명 후 11년 간 한국에서의 준비의 시간이 있었다. 그때 가끔 김포공항에 나갈 일이 있거나 여객기가 문득 하늘 위로 나는 장면을 보면 언제 저 하늘을 날아 볼 수 있을까 무척이나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드디어 때는 왔고 금기의 땅이었던 중국(당시 중공)의 상해를 거쳐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이어 대륙 맞은 편 사할린으로 향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사할린 전역의 개척과 소련 주요도시의 답사를 위해 홀로 3개월을 지냈다.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소련에 서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매일 눈을 뜨면 이게 생시인지 스스로 꼬집어 봐야 할 것 같았다. 눈에 들어 오는 모든 것은 신기하고 그대로 감격이었다. 한달 정도 시간이 지나니 아내와 여섯, 넷, 두살이던 졸망졸망한 아이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결혼 후 7년 만에 이렇게 여러 날을 떨어져 지내니 가족이 어떤건지 뼛속까지 느껴졌다.
3개월의 첫 소련 방문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제 가족들과 함께 선교지로 향할 차례였다. 사할린행 직항비행기였다. 찌는듯한 한국을 떠나 사할린에 도착하니 선선한 날씨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현지에서 거처로 준비해 두었던 교포 할머니의 땅집에 도착하니 모든 것이 생소했다. 수도에서 나오는 흙탕물, 마당 뒤켠의 재래식화장실, 생각지도 못했던 모기떼까지. 파리채도 구할 수 없는 당시 형편에 아이들은 모기밥 신세였다.
얼마를 견디다 머물 거처를 찾게 되었지만 아내와 아이들의 고난의 행군은 이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고, 무엇 하나 구하기 힘들고, 불편하기 이를데 없었던 소련의 끄트머리였다. 한국에서 컨테이너로 여름에 부쳤던 짐은 12월에나 도착했으니 따뜻한 옷도 없이 소련의 첫 겨울을 맞았다. 아내는 몇 달이 지나자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 수술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아이들은 격리와 통제의 소련식 유치원에 질린듯 매일 아침이 울음바다였다.
정신 없이 사할린 개척 초기의 시간들이 이렇게 지났다. 그러나 주님께서 진행하신 일은 놀라웠다. 그해 겨울을 지나고 나니 사할린 전역에 복음이 전해졌다. 10개의 주요도시에 교회들이 세워졌다. 교회를 섬길 사역자들을 모아 가르쳤다. 동역할 선교사들도 속속 도착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반세기를 애타게 고국을 갈망했던 교포들과 함께 하는 순간이었다. 이분들의 그 순전하고 간절한 심장과 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
이듬해 여름에는 대륙의 중심 시베리아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베리아는 한 나라이나 딴 세상이었다. 누구 하나 들여다 보아 주는 이 없었다. 끝없는 대지에 홀로 던져진 가족이었다. 차갑고 거친 대지에서의 사람들의 투박함과 대륙 한 가운데 폐쇠된 사회의 배타성이 우리의 차지였다. 순식간에 외로움과 피로감이 찾아들었다. 본격적인 향수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아무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가족만이 유일한 위로였다.
척박한 대지에서 살아남는 것만도 힘든 시절이었다. 허나 선교에의 열정은 타올랐다. 위로와 충전은 없고 방전과 고갈이 찾아왔다. 특별히 아내는 모국어로 누구 하나 나눌 이도 없었다. 아이가 하나 더 생겨 네 아이들과 집안에서 씨름하던 시절이었다. 탈진과 함께 스멀거리는 향수병으로 지쳐가는 시절이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때 천사들을 보내주셨다. 막내처제와 사할린에서 오랜 시절 신앙을 지키던 할머니 성도님의 1년에 가까운 방문과 도움이 있었다. 3년 만에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겨 다녀온 후에야 타는듯한 향수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어느덧 5년 정도가 지나니 말이며, 사는 것도 익숙해져 갔다. 사역도 자리가 잡혀가니 힘은 드나 재미도 생겼다. 사람들과도 친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외부인으로가 아니라 이들과 함께 하는 평안과 기쁨이었다. 현지를 알아가니 모든 것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고 열정으로 이를 진행해 갈 시점이었다. 대규모의 건축과 여러 사역들이 진행되었다. 10년이 되니 현지의 모든 틀이 놓여졌다. 이때는 현장에 몰입하니 향수가 사라진 듯도 했다.
10년이 지나니 피로 후의 노곤함이 찾아든다. 다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솟아 난다. 때로 며칠씩 공수되어온 한국드라마에 빠져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방인으로 한국을 보는 것임을 느낀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가물가물해지고, 한국사회의 분주함과 경쟁, 각박함이 싫어진다. 적응과 현지화를 넘어 안주의 위험이 도사려 있는 시점이다. 15년이 지나 고국에 돌아와 보면 이제 한국의 현실이 자신의 것이 아닌 외국인이 되어있는 모습에 마음이 아스라해진다.
15년 이후는 현실에 정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와 동시에 이중 문화, 언어, 체험으로 완연한 국제인의 모습이 갖추어진다. 글로벌, 세계인으로의 자질이 갖추어지는 시점이다. 그러나 대부분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 때이기도 하다. 벌써 중년의 50대 무렵이니 말이다. 만들어진 자리에서 현지인으로, 목회자로 경험을 의지하여 삶과 사역을 지속하고 확장해 간다. 시간이 더 지나 60대가 가까워지면 원초적인 회귀본능이 나타난다. 고국으로, 이전의 자리로 돌아가는 수순이다.
영원한 도성을 향해 가는 나그네로의 삶을 생각해 본다. 땅 끝으로의 소명과 이 땅의 하나님나라의 비전을 떠올린다. 이전의 자리로의 회귀가 아닌 하나님나라로의 전진과 세계를 향한 도약을 꿈 꿀 수는 없을까?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두 세계의 다리가 될 수는 없을까? 선교사로 소명 받아 출발한 삶이 선교사로 끝마쳐지기를 소망한다. 물론 현지인과 목회자가 아니라 그마저도 힘들어 세상으로 세속인으로 돌아가는 일도 있으리라.
처음 주어진 소명과 약속 가운데 날마다 새롭게 주어지는 비전으로 나아가는 것이 믿음의 삶이리라. 어느 순간 감격하고, 외치고, 타오르다가 스러지는 것이 아닌 부활과 승천, 하나님나라의 완성을 향해 전진하시는 주님의 걸음을 따르기를 바란다. 누룩인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는 삶이기를…
*선교사의 삶 4* - ‘맥가이버의 탄생’ (2013.12.23)
성육신적인 사역, 삶으로의 선교는 무엇일까? 선교사를 포함하여 한국교회 목회자를 향해 온갖 지탄이 퍼부어지는 오늘이다. 목회, 사역이 직업이 되어 목회기술자, 목회노동자로까지 불리어진다. 현재까지 선교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목회전문가로 훈련되는 목사선교사도 마찬가지다. 신학공부를 통해 전문직업인으로 길러진 목회자는 목회, 사역이 생계의 수단이 된다.
한국사회는 공부와 경쟁의 장이다. 목회자도 공부를 통해 선발되고, 훈련되고, 경쟁하도록 준비된다. 사역에 임해서도 전문성을 발휘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받는다. 온갖 세미나며 재교육이 그 내용이다. 사역의 현장에 들어서면 반사적으로 어떻게 최대의 효과와 결실을 맺을 것인지 프로그램화된 기계적인 반응을 보이도록 설계된 로봇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된다.
초중등과정은 제외하고, 대학부터 따지더라도 두 군데 씩의 일반대학과 신학대학원에서의 주로 공부로 이루어진 12년의 시간을 지나 선교현장에 나간 나도 매한가지였다. 목회와 사역을 위한 기능을 제외하고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운전도 장롱면허부터 시작하는 형편이라 선교현지에서 장거리 운전 초행길에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반(反)문맹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게 이외의 모든 기능은 퇴화되었다. 한국은 전문화사회가 된지 오래여서 생활을 위한 온갖 전문서비스가 너무나 당연하다. 먹고, 입고, 몸 둘 거처, 의식주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거의 모든 것들이 나의 일이 아니다. 물론 한국남성이면 대부분 거치는 군대생활이 최소한 생존의 의지를 길러주는 것이 다행이다. 운동선수의 훈련경험도 도움이 되었다.
타문화권, 특히 오지인 선교지의 삶은 모든 것이 반대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을 거쳐야 된다. 준비된 것은 초중등학교 시절의 실과, 기술 수준이니 써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이런 형편에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돈이다. 물론 불편하고 시간이 걸리는 과정을 감수하고 말이다. 아니면 현지인 동역자나 신자들의 도움을 의지하는 수 밖에 없다.
소련은 서비스와는 거리가 먼 군수산업 중심의 중공업사회였다. 소소한 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너무도 열악하고, 그마저도 찾기 힘들었다. 20년 이상이 흐른 지금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우리와는 천지 차이다. 유독 개척선교사로 아무도 없는 오지만을 찾아나서는 형편에는 이마저도 상관 없는 일이다. 우리가 현장을 떠나고 나면 온갖 시설과 물건들이 들어서고, 쏟아진다.
원하든 않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 손으로 해내는 수 밖에 없다. 소련에 처음 도착하니 책상, 옷장 등 소소한 집안 가구부터 모두 조립식이다. 물건은 분해된 조각으로 판매된다. 주어진 도면 하나를 보고 맞추어가는 식이다. 한국에서는 전문공구를 사용할 일도 없고, 해본 적도 없다. 드라이버만을 가지고 하려니 하나에 온종일이 걸리고, 손이 부르트는 것이 예사다.
얼마를 지나니 식구들이 먹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교회당 건축부터, 차량운행까지 일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러시아에는 전문적인 기술자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러시아 국경을 넘어 압하지야로 들어서니 전문인, 기술자를 거의 찾을 수 없다. 돈을 들여 일을 시켜보아도 제대로 될 일이 없다는 얘기다. 일 자체를 하기 싫어하니 더 문제다.
집이며 차량수리부터 시작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것 모두가 내 일이다. 아예 동네의 전기, 수도, 도로, 배수로까지 내가 나서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 어느새 만능기술자 맥가이버 수준이 됐다. 러시아에서는 모든 남자들의 홈그라운드가 차고다. 집에서는 여자가 왕이니 쫓겨난 신세다. 차고에서 차만이 아니라 온갖 것을 만들고 고치는 것이 남자들의 일이다. 모두가 맥가이버인 셈이다. 이제야 나도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가 보다.
이제 제 손으로 먹고 사는 것이 되니 한국 목회자의 모습이 다른 시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표현을 하면 불쾌하겠지만 대부분 생활장애를 안고 산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영위하는데 장애인이다. 그러니 생활의 필요를 남에게 의지하게 되고, 그 방편으로 목회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오늘 한국목회자의 근본적인 문제는 탐욕이 아니다. 장애다.
유대인들은 고난의 때를 대비해 1인 1기를 습득하는 것이 기본이다. 대부분 직업도 실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우선으로 한다. 바울의 예가 대표적이다. 언제든지 자기 손으로 일해 자신의 삶의 필요를 채운다. 물질적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 목회와 사역에 자신의 목을 걸 필요가 없다. 생활의 방편으로 직업이 아닌 소명과 성직으로 목회와 사역이다.
러시아와 구소련권의 개신교 사역자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남자들이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활의 필요를 꾸려가도록 준비된다. 여기 더해 공산당 박해의 오랜 시절에 목회는 직업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당연히 목회자도 자신의 손으로 일을 하고 봉사로 사역을 한다. 그러니 아예 목회자의 교회에서의 금적적인 문제나 소유의식은 생길 수 없다.
한국 목회자의 탐욕과 세습이 이슈가 된지 오래다. 세습방지법, 목회자 세금 부과, 교회재정 투명성 논쟁이 벌어진다. 문제를 대처하는 고육지책이다. 단언컨대 이로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이미 사회는 경쟁사회의 전문화의 틀이 고정되었다. 직업을 가지고 봉사로 목회하는 것은 개인의 역량을 벗어난 일이다.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 본다. 꼭 이 사회의 틀에서 살아야만 할까? 이미 세계, 특히 한국은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한계에 도달했다. 늘어나지 않는 일자리, 부익부 빈익빈, 반복되는 경제위기, 해소되지 않는 위기의 뿌리… 오늘 거리에 나가 외친다고 해결될 일은 별로 없다. 그 틀 안에서의 놀이인 마당에 누가 들어서도, 어떤 정책이나 법을 만들어도 달라질 일은 없다.
구조의 뒷치닥거리가 아닌 다른 사회, 공동체로 살아 갈 수 있지 않을까? 이미 교회 자체가 사회구조의 희생양이 되어 맛과 빛을 잃었다. 차라리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살지 않고 남을 살릴 수는 없다. 새로운 모색과 전환이 절실한 순간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모험과 작은 시도가 세상을 새롭게 하리라는 소망을 가져 본다. 맥가이버의 작은 외침이다.
*선교사의 삶 5* - ‘인생 도서관, 자연 책방!’ (2013.12.28)
한 세대 전만 해도 문제는 결핍이었다. 아직도 지구 곳곳에 결핍의 문제가 남아 있다. 먹을 것, 입을 것이 없고 배울 형편이 되지 못해 대다수가 문맹이었다. 오늘의 문제는 반대로 과잉, 잉여다. 물건이 넘치고, 사람도 남아 돈다. 21세기에 들어 지구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중국과 인도가 기아선상을 넘었다. 이제 인류의 보편화된 문제는 결핍이 아니라 과잉이다.
1930년대 미국으로부터 시작해 서구를 덮치고, 세계 2차대전의 참화를 끌어낸 것도 잉여생산물의 공급과잉으로부터 시작된 공황이었다. 전쟁수요로 소비가 이루어지니 위기가 지나 갔다. 소비가 미덕이라며 이를 부추기니 이제는 과소비로 거품이 생겨 터져버렸다.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등장한 방법이 ‘양적 완화’로 돈을 마구 찍어내는 것이었다. 이제는 넘치는 돈이 문제다.
교회도 문화의 산물로 그 영향을 고스란히 물려 받았다. 넘치는 수의 화려한 교회당, 엄청난 재정, 수 많은 교인들, 포화 잉여의 목회자들까지 그렇다. 세상이 그렇듯이 이를 지탱하고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비를 조장하는 경영과 마케팅의 기술이 필요하다. 넘치는 홍수 속에서는 깨끗한 마실 물이 귀하다. 세상에서도 교회에도 순전하여 진정한 만족을 주는 것을 찾을 수 없다.
과잉의 문제를 넘어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어떤 길을 가야할 지가 의문이요, 과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웰빙이요, ‘slow life’다. 사회적 기업, 기부운동 등도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한번 넘치는 풍요에 익숙해진 후 절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비만인 체형의 사람이 애를 써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가 요요현상으로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 예사다.
가난과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서 성장과 성공, 부흥, ‘할 수 있다’의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러나 결과로 얻어진 풍요와 성취는 자랑거리는 되었을지 모르나 만족을 주지는 못했다. 이제는 결핍-과잉-거품, 가난-부요-절제의 사이클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때가 된 것 같다. 물론 ‘부익부 빈익빈’으로 상대적 빈자의 위치에 처한 다수는 배부른 소리는 그만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 현재 구조의 사이클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구조를 깨뜨리지 않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다. 성경이 말하는 삶과 사회의 구조를 생각할 수는 없을까? 이에 대한 성경의 메시지를 떠올리면 자족-나눔-평등-평화의 사이클이 연상된다. 가난과 결핍을 무조건 극복해야 할 악으로만 보지 않았다. 물질적 부도 목표가 아니다.
성경은 가난한 자도 지혜롭고, 성실하고, 명철하며, 행하는 자라고 말한다. 가난한 자가 항상 있을 것을 말한다. 가난한 자를 전혀 구별, 차별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심과 신원의 대상이다. 따라서 가난한 자의 위치에서 가져야 할 성경적인 자세는 자족과 당당함이다. 가진 자는 있는 것으로 섬기고 나누도록 부름 받은 종의 역할을 한다. 이들은 어울려 하나인 공동체다.
오늘의 사회는 물질의 과잉 뿐 아니라 정신적인 잉여의 문제도 심각하다. 쓸데 없는 스펙을 쌓느라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 청춘의 군상이다. 공부를 하고 해도 쓸 데가 없어서 잉여인간이 되어 결혼, 출산도 포기하고 캥거루족으로 살아가는 인구가 늘고 있다. 교회도 한가지다. 교회도 온갖 공부에 훈련 프로그램으로 넘쳐 난다. 그러나 정작 삶의 실천과 변화, 섬김은 없다. 신학교와 박사, 교수, 출판물과 정보는 넘치지만 주님이 찾으시는 열매는 찾기 어렵다.
18년을 머물렀던 시베리아를 기억한다. 하늘과 땅이 직선으로 맞다은 혹한의 대평원에서의 삶이었다. 이방인으로 어디 하나 몸두고 지성과 정신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순간은 없었다. 그 적지 않은 시간을 한마디로 줄이면 ‘말없음’이다. 시베리아를 거쳐 현대 인류를 뒤흔든 공명을 주었던 인물들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레닌, 솔제니친이 그들이다. 그러나 그들도 시베리아 시절은 침묵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침묵과 인내의 시간을 거쳐 그들의 정신은 인류를 뒤흔들었다. 그들의 정신은 홍수에 넘치는 흙탕물과 같은 잉여물이 아니었다. 오랜 침잠 후에 정제된 투명성이 그들에게 있었다. 그들의 정신은 시베리아에서 고전(古傳)이 되었다. 시대를 꿰뚫는 정신인 고전이 필요한 오늘이다. 넘치는 홍수의 잉여가 아니라 목말라 헐떡이는 자에게 목을 축일 생명수가 필요하다.
대학부터 시작해 이래저래 거쳐온 공부의 이력이 대학원 합쳐 아홉군데에 이른다. 물론 선교의 소명을 따라 거쳐온 과정이라 졸업이나 학위는 상관 없었다. 목사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만 졸업과 학위를 마쳤다. 독서가 취미(?)였다. 그러나 선교지에서의 23년 동안 러시아와 연관된 현지의 자료를 제외하고는 어떻게 전해 받았던 신문과 정기간행물 외에 제대로 된 책을 대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다.
오랜 정신적 내핍의 시간 동안 온갖 인생 군상과 사건, 광활한 대지, 초원, 황야, 산림, 산악, 바다의 변화무쌍한 자연을 겪었다. 유라시아대륙을 관통하며 온갖 민족, 사람들과 자연을 삶과 사건 가운데 몸으로 새겼다. 무엇보다 극한의 광활한 대지에서의 적막과 고독이 스승이 되었다. 단순하게 사니,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시베리아, 유라시아대륙을 거쳐 온 삶이 주는 선물이다.
잉여시대 홍수의 재난에 아우성치는 소리가 넘친다. 대지에서 인생들과 함께 하는 소박한 삶이 갈급한 오늘이다. 전문적인 기술과 정보가 아니라 인간으로 자연 가운데 어울려 살아가는 법이 절실하다. 지금 머무는 압하지야는 세계 최고 장수촌의 하나다. 카프카즈 산맥 기슭에서 자연과 어울려 공동체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이다. 이 현장의 삶에 우리의 나갈 길과 교훈이 있다.
이미 서구와 세계를 지탱해 온 사회구조의 균열음이 요란하게 울려퍼진지 오래 되었다. 새로운 구조를 마련하지 못하면 이 상황에서의 탈출이 요원한 현실이다. 세계무역센터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것 처럼 사회와 교회의 붕괴가 눈 앞에 있다. 죽음의 도시와 문명을 떠나 새로운 시작을 생각할 시점이다.
주님은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하시고 그리로 돌이키지 말라고 하셨다. 주님이 명하신 곳은 땅끝 모든 민족들에게였다. 이미 땅끝, 모든 민족은 우리 눈 앞에 있다. 이제 가고 이루어야 할 새 삶과 사회를 깨닫고, 일어설 때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으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우리 눈 앞의 현실이 무너져도 두려워 말자. 주님과 함께 새 사회, 새 세상을 만들자!
*선교사의 삶 6* - ‘가서 제자 삼으라’ (2013.12.29)
‘제자도’, ‘제자훈련’, ‘제자교회’… 한때 그저 ‘제자’라는 단어 때문에 마음에 와 닿았고, 울림을 주었던 말들이다. 안타깝게도 어느새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들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제자들에게 집중하셨고, 함께 하셨다. 마지막 명하시고 부탁하신 것도 제자 삼으라는 말씀이었다. 사도들의 행적도 제자들을 가르치고, 세우고 그들과 함께 한 것이다.
심지어 교회, 신자는 거의 사용되지 않던 말들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말이 안디옥에서 생기기 전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를 부르는 거의 유일한 명칭이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이 생겨난 이후에도 제자가 교회, 신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신약에서 내내 사용되었다. 한국교회도 형식화된 신앙의 틀을 벗어나는 시도로 지난 한 세대 동안 제자를 촛점으로 삼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예수님께서 집중하셨고, 명하셨던 제자는 무엇인가? 오늘 한국교회에 벌어진 문제들은 어디에 제자에 대한 몰이해와 오류가 있는가? 사실 제자라는 말 자체에 흥미와 기대를 잃어버려서 얘기를 꺼내기조차 쑥스럽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 공생애 사역의 핵심이다. 주신 명령이다. 사도들이 본으로 이룬 일이다.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예수님은 ‘가서’, 제자 ‘삼으라’고 하셨다. ‘삼으라’는 말은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로 설명되었다. 사도들은 이 명령을 따라 땅끝 열방으로 갔고, 가르쳤고, 죽기까지 지켰고, 자신들의 본을 따라 지키게 했다. 이를 통해 열방은 주님께 회개함으로 돌아 왔고, 배웠고, 그들도 죽기까지 지켰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고, 나아가 제자를 삼았다.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제자를 향한 명령 중 가르치는 것을 제외하고 한 일이 없다. 가지 않았고, 지키지 않았고, 지키게 하지 않았다. 한국교회는 제자를 향한 주님의 명령을 이렇게 바꿨다. “앉아 제자 끌어들여라.” 한국교회에서 신앙의 중심은 교회였다. 예수님이 아니었다. 그러니 갈 수 없었고, 가면 안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땅끝 소자와 열방으로 향하신다.
가지 않고 앉아 있으니 지킬 일이 없다.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 앉아 있으니 소자를 향해 모든 민족들을 향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지킬 일이 없었다. 그리고 한 일은 교회의 틀 속으로 동류의 사람들을 모아 들인 것이다. 모아서 종교생활을 하게 했다. 세상에서 예수님의 모든 말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은 상관 없는 일이었다.
단순히 간다고 예수님의 제자도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서구의 식민지선교가 극명한 예다. 그들은 갔으나 자신의 나라와 교회의 일을 했다. 이방 땅끝에 가서까지 끌어들이는 일을 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나라의 법과 통치, 선교의 이름으로 교회를 전했다. 하나님의 통치와 의의 예수님의 말씀은 없었다. 그래서 끌려들어간 이들이 오늘 그 나라들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가는 것은 그들과 함께 있기 위한 것이다. 함께 하지 않으면 간 것이 아니다. 21세기는 열방이 우리에게 와 있다. 그래서 갈 이유가 어디 있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삶으로 함께 함으로 그들을 찾아가야 한다. 캐나다 밴쿠버에 머문 적이 있다. 200여 민족의 공동체가 모여 산다. 그러나 따로 산다. 교회가, 학교가, 상점이, 거주지가 민족별로 다르다. 한 도시 안에서도 가지 않는다.
34년째 제자의 걸음을 걷고 있다. 선교와 사역에의 부름이 성경을 읽고, 가르치고, 제자 삼는 것을 주로 하는 선교단체에서 주어졌다. 믿음과 동시에 사역이 시작되었다. 교회에서 교사로, 선교단체에서는 목자로 배우고 가르쳤다. 신학교에 들어가서는 교역자가 되었다. 지금까지 아홉군데에서 한 곳에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8년을 사역했다. 감사하게도 모든 곳에서 제자들이 생겨 났다.
제자들이 지금은 한국 뿐만이 아니라 온 세계에 흩어져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강원도 산골에서부터 캐나다, 중국, 베트남, 키르키즈, 사할린, 시베리아, 모스크바, 카프카즈에 이르렀다. 다섯 자녀들도 러시아, 몽골, 독일, 미국, 압하지야 다섯 나라에 흩어져 선교하며, 사역하며 공부로 준비하고 있다. 이들이 있는 곳에서 제자 삼는 일을 하고 있다.
제자도의 핵심은 ‘재생산’에 있다. 정보의 전달이 아니다. 만들어지고 만드는 일이다. 증인으로의 제자사역은 증언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단순한 말로의 증거가 아니다. 중심이 새로와 지는 일, 중생이 첫 단추다. 이는 성령의 일이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성령으로 전 인격이 새로와짐으로 예수님의 제자사역은 시작된다.
선교사로 장시간 머물렀던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는 현악 특히 바이올린에 있어서 세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 한다. 현재 러시아 뿐아니라 세계의 대표적인 연주자들이 이곳 출신이다. 아들이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했다. 함께 교회에서 지냈던 적지 않은 한국유학생들이 바이올린 전공자들이었다. 여기서 본 것은 살아있는 제자도였다.
교수들은 박봉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제자들을 자식처럼 여긴다. 따로 레슨비가 주어지지 않는데도 거의 매일 제자들을 불러 장인과 도제처럼 몸으로 음악을 전수한다. 한번 맺어진 사제지간은 평생의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보통 5살 무렵에 시작된 관계가 대학,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이어진다. 학교나 직장 등은 부수적인 일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제자도의 한 예를 시베리아의 음악인들에게서 본다. 이러니 이들이 세계를 주무르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을 맡기셨다. 그들은 세상 땅끝까지 갔다. 세상을 뒤바꿨다. 역사 중심의 화학 변화가 이루어졌다. 인류역사 내부로부터의 참된 혁명, 개혁, 변혁이었다. 오늘도 동일한 변화가 절실하다. 문제는 우리의 제자됨이다. 제자로의 행함, 삶이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명하신다. “가서 제자 삼으라!”
사도 바울도 외친다. “복음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라!”
*선교사의 삶 7* - ‘가라. 광야로, 니느웨로!’ (2013.12.31)
선교의 출발은 가는 것이다. 떠남이다. 먼저 떠남이 없이는 갈 수 없다. 아브라함은 자기 친척, 고향, 아비집을 떠났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였다. 제자들은 갈릴리였다. 예전에 한국교회의 한 목사님이 ‘별세신학’을 주창해 주목을 끌었다. 어느 선교사님은 ‘내려 놓음’, ‘떠남’이란 제목의 책을 펴내 이 주제를 다루었다. 교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되었다.
떠남을 주제로 한 논의가 화두가 되는 것은 교회의 현 위치를 명확히 밝혀준다. 교회가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오히려 세상의 기득권자요, 중심세력이 되었다. 세상의 풍조를 받아들이는 세속화를 지나, 세상을 탐욕과 우상숭배의 죄로 물들이는 중심이 되었다. 이제는 ‘가나안’ 성도가 일반적인 경향이 되었다. 교회로부터의 출애굽을 논하는 시점이다.
물론 떠나지 않았으니 가나안, 하나님나라에는 근처에도 이르지 못했다. 광야에서 방황하는 세대의 생활이 교회와 신자의 삶이다. 황금송아지 앞에서 광란의 춤을 춘다. 광야의 갈증이 타오른다. 결핍을 채우려는 탐심의 우상숭배가 만연한다. 미국에서는 바이블벨트 지역이 사회적 죄악의 최대 밀집지라는 통계가 언론으로 발표되었다. 한국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떠남이란 무엇인가? 세상 풍조와 가치관, 구조에 매인 삶을 청산하는 것이다. 선교에 이르기 위해서는 여기에 더해 자기 민족, 나라, 언어, 문화를 떠나야 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많고 엄청난 과제로 들린다. 그래서 대부분이 주저 앉는다. 세상 애굽의 고깃가마를 추억한다. 광야의 결핍을 보상받기 위해 더 무서운 탐욕과 우상숭배로 몰입한다.
떠남의 내용은 단순하다. 한마디로 방향전환이다. 시선, 시각의 교정이다. 시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그 결과 주변이 모두 어지럽혀져 있다고 치자. 그 상태로 아무리 청소, 정돈한다 해도 문제는 그대로일 뿐이다. 먼저 안경을 쓰거나, 안과 수술을 하여 시력을 교정하는 것이 해결의 방법이다.
교회, 신자의 시력교정은 구심에서 원심으로다. 자신과 내부를 향한 추구에서 세상과 타인을 향한 방향전환이다. 이것이 제자도, 선교의 출발이다. 아무리 영성과 지성, 열정으로 행한다 해도 방향의 전환이 없으면 주님과는 상관 없는 일이다. 주님은 이런 자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중심의 변화로부터 떠남과 세상과의 별세, 선교의 삶이 시작된다.
농구선수로 운동의 환상을 좇던 대학 신입생 시절 화창한 봄날에 내면의 공허와 인생의 의미에 대한 질문, 진리에의 갈증이 찾아 왔다. 예기치 않게 그 해 여름 수술대에 오르고 병상에 누웠다. 성경을 대하니 깜깜이었다. 주님은 살아계셔서 친히 말씀하시며 찾아 오셨다. 어둠에서 빛을 본 순간이었다. 아직도 눈은 거의 감겨있어서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가 없었다.
1년여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눈의 비늘이 벗겨졌다. 결정적인 순간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삶의 교훈과 말씀으로 내면을 들여다 본 시점이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더 이상 내면의 탐구나 자기의로 나갈 수 없는 전환점이었다. 예수님, 복음이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시각의 변화였다. 주님의 의가 나의 의가 되었다. 떠남, 내려 놓음, 별세로 우리의 갈증은 해결되지 않는다. 생수의 근원, 반석에서 나는 샘물을 찾아야 한다.
떠남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가기 위해서는 길을 보아야 한다. 우리가 보아야 할 길은 주님의 약속과 비전이다. 나에게는 금기의 땅이었던 공산권과 그 모국 소련이 약속이요, 비전이었다. 소명으로 고향에서 이방인이 되었다. 유행과 사회나 교회의 구조와는 상관 없는 삶이었다. 갈 길을 봄으로 떠남은 시작되었다. 새 삶의 걸음이었다. 세상, 땅끝으로의 선교, 사명의 삶이 열렸다.
이 길을 향한 삶은 믿음의 걸음이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가는 항해다. 80년대 소련은 철의 장막이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 만이 나를 지탱해 준 힘이었다. 믿음 가운데 약속의 비전은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에 철빗장이 스스르 열리더니 소련이 나에게 서울로 찾아 왔다. ’88 올림픽이었다.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주님의 약속과 그분으로부터 오는 비전이다. 약속은 흔들리지 않고, 비전은 살아움직이는 동력이다. 선교는 주님의 일이기에 그분께서 보여주시고, 일하시고, 만들어가시며, 인도하시는대로의 동참이다. 주님은 어린 예레미야에게 열방을 맡겼다. 어부였던 제자들에게 땅끝 모든 민족을 부탁하셨다. 우리는 주님의 비전으로 세계역사를 움직이는 주인공이 된다.
곧이어 소련이 열렸다. 유라시아대륙 북방이 열렸다. 광활한 대지였다. 북극으로부터 시작해 아열대 기후까지, 사막으로부터 울창한 산림에, 광활한 초원과 얼음땅, 섬과 지상 최대의 대륙이었다. 200여 민족과 15개의 나라가 되어진 공화국들이었다. 열려 눈에 들어온 대륙을 향해 어디로, 어떻게 나갈 것인가? 이제 실제 걸음을 옮길 순간이다.
선교의 걸음을 옮기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성령의 음성과 인도, 동행이 필요하다. 어느 순간에 어디로 갈 것인가? 성령께서만이 그 대답을 아신다. 왜냐하면 그분의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에는 아무도 없는 광야로 가야 한다. 니느웨 같은 세상의 도성, 대적들의 소굴로 가야 할 때도 있다.
11년을 소련을 위해 준비한 내게 처음 성령께서 보여주시고, 명한 곳은 동포들의 한이 어린 뭍도 아닌 섬 사할린이었다. 다음은 아무도 날 찾지 않는 대륙 한가운데 혹한의 시베리아 중심대도시 노보시비르스크였다. 모든 선교의 기반이 잡힌 순간에 주님은 땅은 지상낙원이나 사람들은 핏기 어린 카프카즈 테러와 전쟁의 한 복판으로 보내셨다. 이제 소치 올림픽으로 선교의 전기를 맞는가 싶은 순간에 한국으로, 서울로, 세계의 중심도시들로 갈 것을 명하신다.
사할린에서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평생을 해도 안될 일을 3개월 만에 주님은 하셨다. 시베리아에서는 최장 10년을 생각한 일을 18년 동안 힘겹게 마무리했다. 카프카즈에서는 일반 선교상식으로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시간이 4년(준비기간 합쳐 6년) 째다. 빌립 집사는 광야에서 한사람에게 전도함으로 한 나라를 선교했다. 요나는 원치 않았지만 제국, 대적의 도성을 회개시켰다.
선교는 주님의 일이다. 성령께서 친히 진행하신다. 떠남과 믿음과 순종으로의 길이다. 주님이 주신 대위임령의 첫 단추 ‘가라’의 말씀이 성취되는 나와 주님의 교회이기를 바란다.
*선교사의 삶 8* - ‘생명의 역사’ (2014.1.2.)
교인의 ‘수평이동’이 화두가 되어졌다. 복음전도의 열매가 희귀하다. 중생과 세례도 찾아 보기 힘들다. 영적 생명의 탄생이 사회의 줄어드는 출산율보다 앞서는 모양이다. 전후 베이비붐과 교회 부흥의 한 세대가 지나고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베이비붐 세대의 IMF 사태 후의 파산과 함께 그 자녀 세대의 몰락이 오늘이다. 동일한 시간에 교회의 쇠퇴가 진행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며, 예수님의 살아있는 몸이다. 생명의 생산이 출발이다. 그러나 불임시대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전문적인 학자들의 수치로의 예상은 더 암울하다. 한 세대 후 교회는 현재의 절반이 되리라는 보고다. 아마 그 대다수가 남겨진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한 노년층일 것이 분명하다. 서구교회의 현재가 한 세대 후 한국교회라는 말이다.
소련 선교 소명 후 한동안 사도 바울과 같은 독신으로의 선교를 생각했다. 홀몸으로도 공산권의 태두인 소련에서의 선교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데이트도 거절하고, 교회에서 독신선언을 하기도 했다. 물론 결혼을 하고도 소련선교를 이유로 자녀를 의도적으로 갖지 않은 동료 가정들이 있다. 또 80, 90년대의 국가정책이 저출산을 목표로 한 것임도 기억한다.
그무렵 어느 날엔가 홀로 철야기도를 하는 중에 내게 바울과 같은 독신의 은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도제목이 생겼다. 독신의 은사가 없다면 합당한 배필을 주시기를 기도했다. 얼마를 지나지 않아 ‘소련에 선교사로 갈 사람’이란 말에 ‘신발짝’을 찾았다고 한 아내를 만났다. 결혼 전 은사 교수님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릴 때 물으신 “자녀는 몇이나 가질 것인가?”란 질문에는 하나라고 대답했다.
결혼하고 나니 그 후 한 해 동안 뜻하지 않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제목의 설교만 3번을 거푸 들었다. 주님이 주시는 음성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2남 3녀의 다섯 자녀가 슬하에 생겼다. 지금은 다섯 자녀가 다섯 나라에 흩어져 있다. 러시아 현지에서는 자녀가 열 명 정도인 목회자 가정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교인들도 이러니 교회는 출산으로 그 수가 증가한다. 확실한 전도와 부흥의 방편이다.
물론 혈통적 가족교회로 그리스도교회가 되는 것은 성경이 의도한 바가 아니다. 교회는 영적 가족이다. 이를 위해서는 영적 자녀의 출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출산의 일반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젊은 신혼부부들에게서 주로 자녀가 생산되듯, 회심하고 첫사랑으로 주님과 맺어진 영혼에게서 주로 영적 자녀가 출생한다.
그럼 영적 생산의 포인트는 누가 회심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그분의 신부가 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알려진대로 회심의 대부분은 10대에 이루어진다. 또 이주한지 3년 이내의 타향, 타국인들이 복음에 수용성을 가진다는 것이 선교학자들의 보고다. 이로 보건대 교회의 영적 불임시대를 극복하긴 위한 타겟은 분명하다. 외국인이나 이주민의 자녀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교회에서 거의 거론 조차 되지 않는 이들이다. 이제야 겨우 다문화사회로 외국 이주민과 그 가정들에 대한 관심이 생겼으나 당장 어른들의 문제만 얘기될 뿐이다. 그러나 다문화 사회로 진화되는 다음 세상의 주역은 이들이다. 현재 세계 최대의 실권을 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명확한 예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잘 알려진 탄생의 배경과 그의 유년기 및 성장기, 사춘기와 청년기의 방황을 거쳐 교회에서 자신의 인생의 의미와 방향을 발견하기 까지를 떠올릴 수 있다. 미국교회가 흑백으로 나뉘어 지지 않고, 이념과 이슈로 길을 잃지 않았다면 오늘 오바마가 통치하는 미국의 모습이 어떠했을까를 상상해 본다. 누가 이 순간에 던지는 물음이 들려 온다. “근데 웬 남 얘기냐?”고.
그런데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닌 것이 오늘의 한국이다. 기존 유럽의 기독교 전통의 국가들의 어제가 그랬다. 이미 유럽은 이 문제로 신음하고 시들어 간다. 한 세대 전에 교회들이 잠잤기 때문이다. 오늘 그 외국인 이주민의 자녀들이 분노의 핵으로 사회를 뒤흔든다. 교회는 문을 닫기 바쁘다. 그들이 갈급할 때에 한 잔의 물을 내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우리 삶의 현장이 선교의 최전선이다. 새 생명의 탄생을 간절히 고대하는 모태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지금까지 틀에 박혀진 우리 민족의 교회에 있다. 나라의 문제가 이슈다. 통하는 언어만도 부족해 끼리끼리의 모임을 교회의 교제와 소통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이 걸음의 다음 장면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서구의 깨어지는 사회와 무너지는 교회다.
교회의 오늘에 생명의 탄생이 없다면 당연히 내일은 없다. 그러나 교회는 오늘의 문제(?)에 너무 바빠 진짜 오늘의 문제를 볼 여유도 시각도 없다. 어떻게 영적 소경들의 행진을 막아볼 도리가 없을까? 누구는 쇠사슬을 몸에 감고 분신자살을 했다고 한다. 그럼 누가 이미 예고된 교회의 죽음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질 것인가?
지금 애타하고 핏대를 올리는 것이 정말 우리 사회와 교회의 생사를 좌우하는 일인가? 지금 물 한잔을 목타하며 기다리는 소자가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이들을 돌보면 생명 탄생의 역사는 일어난다. 그러나 오늘 이들을 외면하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교회의 죽음이요, 갈가리 찢어진 나라와 사회의 앞 날이다.
이들은 우리 눈 앞에 또 동시에 땅끝에 있다. 지구촌이다. 선교사로 목타는 영혼들의 이방 땅에서, 또 고향으로 돌아와 이방인으로 만난 이들을 섬기는 시간들이었다. 희어져 추수하게 된 곡식을 거두는 주님 일군의 사역으로 선교를 기억한다. 주님은 추수할 일군들을 오늘도 찾으신다.
오늘 우리의 관심은 내 교회, 내 사역, 내 주의, 내 주장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에 관심이 없다. 주님의 관심은 잃어버린 한 영혼이다. 소자다. 이방땅에서 목타는 외국인과 나그네다. 이것이 주님이 보시는 오늘이다. 이것이 내일의 교회와 사회다. 선교는 오늘 주님 나라의 일이다. 역사의 심지다. 오늘 없이는 내일이 없다. 선교는 생명의 역사다. 교회는 선교다.